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문단 편집) === 러시아 ===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보리스 옐친]]이 통치하는 러시아에서 혹독한 역사를 경험한 현재의 러시아인들은 브레즈네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며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등 소련의 주요 구성국들이 독립하면서 [[모스크바]]를 보호할 완충지대가 순식간에 쪼그라든 것은 물론이고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이 순식간에 후진국 수준으로 몰락하면서 수 백만의 인구가 사망, 이민 등으로 영구 손실을 입어버렸다. 게다가 사회적 분배를 어느정도 보장하던 소련 시절과 달리 사회안전망이 완전히 붕괴된 러시아에서는 빈부격차가 급속도로 늘어나버렸고 그 결과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도 급감하고 저출산까지 겪게 되었다. 사회안전망의 붕괴로 인해 범죄율이 급증하고 [[네오나치]], [[레드 마피아]]와 같은 막나가는 폭력조직들도 늘어난 것은 덤이다. 결국 현대 러시아인들, 특히 브레즈네프 시기를 보낸 사람들 입장에서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해나가며 살기도 편했던 당시가 좋아 보일 수 밖에 없다.[* 이 뒤에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옛 러시아의 영광을 부활시킨다고 [[남오세티야 전쟁]], [[돈바스 전쟁]], [[시리아 내전]] 등에 개입하며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려 하였지만, 소련 시절의 복지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워졌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도 평화와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상술했듯 장기간의 집권 과정에서 결정한 막대한 군사비 증강은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고, 자원 수출 위주로 경제 구조를 결정지어 버린 것은 소련은 물론 후임 러시아에 있어서도 두고두고 큰 우환이 되어버렸으며, 결정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것은 소련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 여기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적기에 퇴임하지 않아 후임 서기장이 될만한 인물들도 다같이 늙어버리는 결과를 낳아, 결국 통치 스타일이 안정적인 노선만 추구하며 보수적인 노선만 탄 결과 브레즈네프 시절 말기에 이르러서 젊은 세대들은 보수적인 늙은 세대들을 혐오하며 깊은 변화의 욕구가 쌓여버리고 만다.[* 일례로 1981년 [[레흐 바웬사]]의 폴란드 노조 사태로 서방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도 브레즈네프는 해결책으로 정치국에 [[데탕트]]를 주문할 정도였다!! 당연히 이 시기는 [[소련 아프간 전쟁]]과 미국의 공격적인 [[반공]] 선전으로 데탕트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브레즈네프는 과거 자신에게 영광을 안겨준 데탕트라는 보수적인 해결책을 찾을 정도였다.] 이 쌓인 불만을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로 폭발 시켜버리자 소련은 폭주하며 통제불능 상태가 되며 멸망해버린다. 종합적으로 그는 소련의 운명을 알게 모르게 종말로 가게 했다. 다만 젊은 세대의 불만을 브레즈네프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어폐가 있을 것이다. 이 불만을 폭주로 만들고 통제하지 않아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태로 만든 것은 [[고르바초프]]이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시기 말기에 이르면 소련은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해 경제 붕괴, 민족주의 대두 등 수많은 문제가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각 공화국 도시들에서 대규모 시위 사태도 일어났다. 그 때문에 계엄군이 투입되는 사태도 생겼는데 고르바초프는 이들의 무력 사용을 금지 해서 계엄군은 분노한 인민들과 미디어에 그대로 노출되며, 정치국은 [[소련군]]에 대한 통제력 자체가 흔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비슷한 시기 [[8월 쿠데타]] 세력도 이런 고르바초프의 행동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공도 있는데, 소련 공산당 정치국 내부에 득실거리는 매파들을 견제하면서 그로미코, 안드로포프를 지원하여 프랑스, 서독, 미국과의 데탕트를 이끈 것은 오로지 브레즈네프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불가능했다는 것이 당시 독-소 데탕트를 이끌었던 에곤 바르나 역사학자 블라디슬라프 주보크 등의 평가이다. 브레즈네프는 정치국 내부의 무능한 매파들을 실각시키고 똘똘하고 젊은 국제부 간부들을 중용하였는데, 대놓고 자신의 외교 보좌관들에게 "저들이 자네들을 먹어치우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두진 않을걸세."라고 그들이 자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젊고 실용적인 개혁파 관료들은 브레즈네프의 보호 덕분에 중진으로 성장하여 이후 고르바초프의 측근들로 자리잡게 되는데 문제는 소련이 망하면서 딱히 브레즈네프가 이들을 지켜준 것이 고평가받긴 힘들게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